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루스 애쉬비 (문단 편집) == 모살설 == 그의 죽음으로부터 43년 뒤인 우주력 788년, 그가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전사한 게 아니라 실은 모살,,,謀殺,,,당했다고 주장하는 투서가 매주 화요일마다 36주 동안 [[자유행성동맹군 통합작전본부]]로 날아들었다. 통합작전본부는 이 모살설에 대해 모살 가능성이 없다고 입증하기 위해 [[엘 파실 전투|민간인 탈출작전]]의 성공으로 막 소령으로 진급한 [[양 웬리]]를 비공식 조사위원에 선임했고, 양 웬리는 이 모살설에 대해 조사하기 위해 730년 마피아의 마지막 생존자, [[알프레드 로자스]]를 만난다. 이게 외전 5권 <나선미궁>의 줄거리. 통합작전본부에 온 투서는 의문점이 있었는데, 투서를 한 사람이 브루스 애쉬비의 두 번째 부인 '루신다 애쉬비'로 되어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9년 전 59세의 나이로 수면제 복용량을 착각하는 바람에 죽었는데, 이 사실을 카젤느로부터 들은 양은 투서를 보낸 사람이 그녀가 죽은 걸 모르고 썼거나 또는 죽은 걸 알면서도 그녀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런데 조사 도중 [[알프레드 로자스]]가 수면제 양을 착각해버리는 바람에 죽었다. 그의 사후 양 웬리는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가했던 중견 사관이나 하급병사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의 리스트를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출장신청서를 냈으나 사흘 뒤 상부는 양을 한직인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의 참사관으로 발령냈다. 양은 애쉬비 조사 따문이라고 추측했지만 카젤느가 어떻게든 빨리 돌아오도록 할 테니 지금은 귀가해서 짐 싸라고 하자 돌아가서 짐을 쌌다. 그런데 뜻밖에도 양은 에코니아 포로수용소에서 제2차 티아마트 회전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상당수 만날 수 있었다. 그 중에는 [[크리스토프 폰 쾨펜힐러]]라는 제국군 포로도 있었는데, 그를 통해서 과거 제국군 미켈젠 제독의 암살과, 제국군 지크마이스터 제독의 망명, 브루스 애쉬비의 화려한 활약 뒤에 있는 또 다른 가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양은 제국의 첩보조직이 동맹의 권력자들에게 브루스 애쉬비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 모살할 수 있다고도 생각했으나 일단 이 가설의 근거는 어디까지나 쾨펜힐러가 모은 자료로 추측한 거라 결정적인 증거도 없었고, 제국군이 동맹에 상호불신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 일부러 모살설을 제기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결국 브루스 애쉬비가 모살되었는지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무래도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이 군사기밀이라는 명목으로 은닉한 역사적 사실 속에 있을 것이었으므로, 양은 지크마이스터 망명-미켈젠 암살-브루스 애쉬비 전사라는 세 사건을 잇는 진상이 밝혀지려면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한 이후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 때문에 브루스 애쉬비 모살설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쾨펜힐러가 남긴 자료들은 B급 중요자료로서 25년간 봉인되었으며, 양은 제8함대 사령부 작전과로 발령나갔다. 결국 브루스 애쉬비가 모살되었다는 것과 투서를 보낸 범인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다. 양 웬리는 모살설에 대하여 몇몇 아는 이들에게만 털어놓았는데 다들 글쎄.....? 라는 반응이었다. 파트리체프는 그래봐야 정치인들 스스로 목에 줄을 거는 행위라고 평가했고 [[더스티 아텐보로]]도 적어도 제국을 아주 멸망시킨 다음이라면 모를까, 아직도 제국이 강대하게 있거늘 애쉬비 제독을 모살한다는 짓을 동맹 측 정치인이 벌였다는 건 스스로 관짝에 못 밖는 짓이라고 미덥지 않아했다. 양 본인도 강력하게 모살설을 굳게 믿던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브루스 애쉬비 원수 모살설 투서 사건]]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